안녕하세요. 바람처럼 물처럼 e-레터를 배달하는 이야기 수집가, 훈훈입니다. 바람처럼 물처럼 첫 번째 레터는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 물 5호 : 흙의 생태학>을 함께 읽습니다. 책 속의 내용을 일상의 에피소드와 함께 엮어, 이야기로 전합니다. 완결된 생각이라기 보다 단상에 가까우며, 정답보다는 수많은 물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럼, 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얼마전 같이 일하는 직원이 물었다. "화분을 키우는데 분갈이를 하고 난 흙은 어떻게 버려요?" 흙을 버리다니. 초보 식물집사는 꽤나 난감한 눈치였다. 종량제 봉투에 넣자니 쓰레기는 아닌 것 같고, 보관하자니 다시 쓸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자연은 거대한 생태계로 연결되어 있어, 그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화되고, 죽어가는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지만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속 도시의 삶에선 생태계와 철저히 단절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분갈이를 하고 난 흙은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 수많은 미생물들에 의해 다시 무기물과 유기물이 혼합된 토양으로써 순환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는 흙의 생태계를 찾아보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냥 쓰레기 봉투에 넣어버리는 것이 쉽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생태환경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초등학생들과 함께 숲(잘 가꿔진 숲이 아닌)에 처음 들어간 날이었다. "악, 쌤, 흙 더러워요." "흙에서 벌레 나와요." 급기야 우는 아이도 있었다. 흙과 숲을 지키는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흙과 숲을 싫어했던 것이다. 흙이 중요하다고 배웠지만 사랑하지는 못했다.
현대인은 땅을 투기 대상이나 상품으로 소유하려고 들지만, 그 땅을 이루고 있는 흙에 대해서는 더럽고 비위생적인 물질로 여기는 이중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생존이 흙에 얼마나 기대고 있고 흙 속에 얼마나 다양한 유기체들이 깃들어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흙은 식물과 동물, 미생물들이 공존하며 생명의 순환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터전이자, 썩은 물질을 정화하고 새로운 양분을 만들어내는 필터 역할을 해왔다. 몇 센티미터의 비옥한 흙이 만들어지는 데는 천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흙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역사와 생물 다양성을 살아 있는 감각으로 느끼기에는 우리가 뒤집어쓰고 있는 문명과 자본의 외투가 너무 두껍기만 하다.
바람과 물 5호에서는 흙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구체적인 현실 문제로 나아가,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질료로서의 흙까지 다루고 있다. 흙이 인류에게 중요하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하지만, 왜 중요한가에 대해 따져보면 이유는 제각각이고, 경험도 부족하다. 생태동아리 초등학생들은 흙이 중요하다고 머리로는 알지만 경험적으로 알 지 못했던 것이고, 화분 분갈이 흙을 버리는 생각까지 해야 했던 직원은 흙이 배제된 도시 속에서의 삶의 한계에 직면했던 것이다. 나희덕님의 글처럼 '흙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역사와 생물 다양성을 살아 있는 감각으로 느끼기에는 우리가 뒤집어쓰고 있는 문명과 자본의 외투가 너무 두껍기만' 한 것이다.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한 이래 흙은 늘 중요했다. 식량문제는 인류가 탄생한 이래 한 번도 변하지 않는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농촌의 인구가 줄어들고, 토양이 황폐화되면서 흙은 더 중요해 질 줄 알았다. 어떻게 흙을 되살릴 수 있을지 인류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흙을 이용하지 않고도 농사지을 수 있는 방법이 속속들이 개발되고 있다.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밀농업(데이터과 관측에 기반한 농업, 남재작x이병한, 바람과 물 5호 참고 📖전문보기)도 말해지고 있다. 이렇게 흙은 우리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다시, 흙의 생태학이 필요한 이유다. 흙의 생태학은 흙이 중요한 이유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작업일 것이다.
기후변화의 핵심 원인은 화석연료의 사용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 및 정책은 어떻게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거나 다른 대체 에너지를 얻을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생태계를 통해서 훨씬 많은 양의 탄소가 지구상에서 순환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이 순환에서 토양의 역할이 얼마나 핵심적인지는 더욱 알려진 바가 적다...(중략)... 생태계에 탄소가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저장되는 방법은 바로 토양 안에 분해되지 않은 유기물로 축적되는 것이다....(중략)... 그런데 이런 이탄습지나 영구동토층에 축적되어 있는 탄소들이 미생물에 의해 점점 분해되면서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이탄습지의 경우에는 인간의 활동으로 습지의 물을 빼서 농경지나 주거지로 개발하거나 가뭄으로 인해 물이 줄어드는 것이 관찰되고 있다. 또한 북극의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영구동토층도 더 이상 얼어 있지 않고 녹아버리면서 미생물들의 분해작용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우리 인간이 화석연료를 태워 기후변화를 일으켰지만, 이후에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인다 해도 이미 벌어진 기후변화의 후유증으로 토양에 오랫동안 저장되어 있던 유기물이 분해되고 그 산물로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