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바람처럼 물처럼 e-레터를 배달하는 이야기 수집가, 훈훈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신기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내가 경험했던 것에 의미를 덧붙여 주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책읽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많은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바람과 물>의 지난 호를 찬찬히 읽다보면 생태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내가 일하는 곳에는 숲이 하나 있는데, 그 숲은 야생의 숲이다. 야생의 숲이란 우리가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원이나 숲을 떠올리면 안되기에 내가 붙인 이름이다. 실제로, 어떠한 인간의 인위적인 손길도 닿지 않았으니 야생의 숲이 맞기도 하다. 그 숲에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야생의 숲을 맞닥뜨리는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놀랍도록 각양각색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숲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며칠 전 생태동아리 초등학생들과 그 숲에 들어갔다. 숲을 완전체라고 생각했을 때 어떤 존재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호기롭게 숲에 들어간 아이들은 나무도 관찰하고, 돌틈의 이끼도 신기하게 들여다 봤다. 여기저기 떨어진 도토리도 잔뜩 주웠다. 하지만 숲속의 흙을 만지는 것은 두려워했다. "흙이 무서워요" "흙이 더러워요" 몇 년 째 야생의 숲에 들어갈 때마다 아이들이 보여준 반응이었다. 이제는 놀라울 것도 없었다. 숲에서 나왔다. 우리가 가 본 숲을 떠올리면서 생명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떠올려 봤다. 다양한 존재들이 공존하는 작은 지구를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버려진 페트병에 관수장치를 하고, 상토를 담아 식물을 옮겨 심었다. 숲속의 흙은 만지는 것조차 어려워 했던 아이들이 분갈이 상토를 만질 때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흙의 촉감이 좋아요" "흙에서 좋은 냄새가 나요" 놀랍게도 아이들은 흙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숲속의 흙은 두렵고, 상토는 좋다고 느끼는 감각의 차이는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아이들은 왜 야생의 숲을 두려워 했을까?
깨어나려는 열망으로 가득했던 인류의 선조들은 숲으로 가거나 사막으로 갔다. 두 자리 다 고독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택해서 들어가던 곳이라는 점에서 일치하지만 숲의 영성과 사막의 영성은 그 특질에 있어서 확연히 다르다. 사막은 건조하고 단순하고 텅 비어 있다. 반면 숲은 어둡고 축축하고 미지의 생명들로 가득해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자발적으로 인간이 구축한 삶이나 문명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런 자리로 찾아든 사람들에게는 인간과의 대화가 아니라 자연과의 대화 혹은 우주와의 소통이 훨씬 열려 있었다. 자연과의 정신적인 연결성이 살아 있었다.
고혜경, <바람과 물> 3호 중에서 📖본문보기
가끔 어른들과 야생의 숲에 들어가기도 한다. 어른들의 반응도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른들은 "숲이 지저분하다"고 표현한다. 곳곳에 거미들이 집을 지어놓고, 나무는 질서없이 자라나고, 잘 닦여진 데크도 없고, 벌레들은 쉴세 없이 날아다니는 곳. 그들에게 야생은 지저분한 것이다. 어른들과 숲에 가기 전엔 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숲과 야생이 어떻게 다른지 꼭 설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숲을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실망부터 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숲으로 가길 원한다. 다만, 야생의 숲은 아니다. 사람들이 가고 싶은 숲은 우리에게 충만한 휴식과 위로를 주는 숲이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숲은 아닌 것이다.
도시의 녹지는 파편화가 그 특징이다. 여기에 작은 공원 하나, 저기에 아파트 정원이하나. 분절되고 흩어진 녹색의 조각들을 돌아다니며 활용할 수 있는 소수의 생물을 제외하곤 이 조각들간의 간극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나마 새처럼 이동이 용이한 동물 정도가 부서진 녹지들의 '조각 모음'을 통해 겨우 살아갈 수 있다. 즉 동물에 의해 이어짐이 간신히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숲은 다르다. 숲은 원래부터 이어진 곳이다. 아니 이어져야 숲이다. 다른 생물이 억지로 잇는 행위가 없어도 이미 이어져 있어 생물은 그저 자신들의 삶에 집중하면 되는 곳. 그 이어짐이 쭉쭉 연장되어 결국 어떤 일정 수준 이상의 면적을 낳는 곳. 그런 곳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곳을 숲이라 부른다.
김산하, <바람과 물> 3호 중에서 📖본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