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정 | 연세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토양미생물학자, 『다양성을 엮다』 외

공상과학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8년 전쯤 개봉했던 맷 데이먼 주연의 〈마션〉이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화성 땅에 홀로 떨어져 몇 년이고 살아남아야 하는 주인공의 눈물겨운 사투가 묘사되고 있다. 산소와 물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안한 다음 주인공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의 분변을 화성 지표의 무기물에 섞어서 흙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 인간의 생존에 흙, 좀 어렵게 말해서 ‘토양’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화성과 같은 외계 행성에 인간이 거주하게 된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행성의 대기 조성을 바꾸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렇게 다른 행성을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조건으로 바꾸는 공학적 기술을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 부른다. 이 단어의 의미 자체가 바로 ‘토양 만들기’이다. 인간의 생존에서 토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용어이다. 역설적이게도 토양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흙’은 그리 매력적인 대상물이 아니다. 농촌이 붕괴되고 도시 거주 인구의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대학 입시에서 농학 전공의 인기가 낮은 것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흙을 홀대해온 인간들의 생각은 바로 우리 생존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반대로 흙을 잘 이용하면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 기회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토양이란 무엇인가

토양을 이용한 기회에 대해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토양이란 무엇이고 어떤 속성들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토양은 지표면 부근에서 암석이 풍화되어 생성된 무기물질에 생물체에서 유래한 유기물이 혼합된 물질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큰 암석이 부스러져 만들어진 모래, 미사, 점토와 같은 무기입자들과 낙엽과 같은 식물이나 일부 동물과 미생물 사체들에서 유래한 유기물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 바로 토양이다. 이들이 얼마나 성기게 쌓여 있는지 아니면 조밀하게 다져져 있는지에 따라서, 토양 사이에 물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건조한지에 따라서 산소의 농도가 크게 변화한다. 또한 토양 입자에 얼마나 많은 이온들이 붙어 있는지에 따라서 식물들의 성장에 절대 필요한 질소, 인, 칼륨 등과 같은 영양분의 농도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런 환경이 식물 생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가 말하는 비옥한 토양인지 아니면 척박한 토양인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토양의 물리화학적 특성 이외에 거기에 살고 있는 생물들도 토양의 생성과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식물의 잔뿌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곤충과 지렁이와 같은 무척추동물들이 토양입자들을 먹고 배설하면서 토양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세균, 균류, 고균 등과 같은 미생물들이 끊임없이 토양 속 유기물을 분해하고 여러 가지 물질들의 순환에 기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이산화탄소를 내놓는 호흡이 진행되고,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육상에서 수십 미터에 달할 정도로 크게 자랄 수 있는 토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토양 오염과 환경문제

토양은 인류의 농경생활이 시작된 이후로 인간에게 매우 친숙한 매체이다. 그러나 여느 환경매체와 마찬가지로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오염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군기지 반환 문제로 널리 알려지게 된 유류 오염의 문제가 있고, 폐광 주위나 산업단지의 폐수에 노출된 토양은 다양한 종류의 중금속이나 합성 유기물에 오염되어 있다. 최근 들어서는 미세플라스틱을 비롯하여 새로운 유형의 물질로 인한 오염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른 곳에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글에서는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서 논의를 이어가보고자 한다. 금세기 들어 인류의 안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문제는 바로 ‘전 지구적 기후변화’라 할 수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 땅속 깊숙이 지질학적인 긴 시간 동안 쌓여 있던 석유나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캐내서 다량으로 태워버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상당 부분이 대기 중에 축적된다는 것이다. 이 ‘온난화기체’는 대기 중의 온도를 계속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고, 이로 인해 대기의 온도가 올라갈 뿐 아니라 강수 패턴도 급격히 바뀌어서 가뭄과 홍수의 빈도나 강도가 증가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대륙의 빙하를 녹이고 해수의 부피를 증가시켜 해수면 상승과 같은 부차적인 환경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기후변화의 핵심 원인은 화석연료의 사용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 및 정책은 어떻게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거나 다른 대체 에너지를 얻을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생태계를 통해서 훨씬 많은 양의 탄소가 지구상에서 순환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이 순환에서 토양의 역할이 얼마나 핵심적인지는 더욱 알려진 바가 적다. 매년 인간이 화석연료를 태우고 산림을 파괴해서 배출하는 탄소의 양은 약 11Pg(1 Pg의 P는 ‘Peta’의 준말로, 1015의 양을 의미한다. 즉 1Pg의 탄소는 1×1015g을 의미한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생태계에서는 훨씬 더 큰 순환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양의 10배도 넘는 120Pg의 탄소가 매년 식물의 광합성을 통해서 생태계로 흡수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과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밥을 먹고 이를 대사하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이에 비해서 식물은 광합성이라는 과정, 즉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물과 몸의 효소를 활용하고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서 많은 에너지를 포함한 유기물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많은 탄소를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 상태에서 이렇게 흡수된 탄소의 절반은 식물 스스로가 생명을 유지하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 다시 이산화탄소로 배출한다. 또한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 그리고 대부분 토양에 있는 미생물들이 먹이를 분해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서 다시 공기로 돌려보내는데, 이를 호흡이라 한다. 만일 우리가 숲의 면적을 더 늘리거나 현재 숲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더 크게 빨리 자랄 수 있게 한다면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식물에 저장된 탄소는 식물이 죽어 분해되면 다시 대기로 돌아가며, 특히 대규모 산불이 일어나면 그동안 쌓아둔 탄소의 저장은 말짱 헛일이 되어버린다. 생태계에 탄소가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저장되는 방법은 바로 토양 안에 분해되지 않은 유기물로 축적되는 것이다.

탄소 저장고로서 토양의 역할

식물의 낙엽이나 뿌리들이 죽어 흙으로 들어가면 이들은 토양에 있는 작은 미소동물들이나 보이지 않지만 수가 엄청나게 많은 미생물들에 의해 분해된다. 앞서 말한 호흡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긴 시간에 걸쳐서 일부는 분해되지 않고 땅속에 쌓이게 되며, 지질학적인 시간 동안 지구 전체의 육상생태계 토양에 쌓여 있는 이러한 유기물의 양은 약 1,500-2,000Pg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깊은 숲속에 들어가서 낙엽을 긁어내보면 그 아래 시커먼 토양을 볼 수 있는데, 분해되지 않은 유기물들이 쌓인 이 흙을 부식토라고 부른다. 그런데 식물이 죽어도 잘 썩지 않는 환경조건을 가진 지역에서는 이렇게 쌓이는 유기물의 양이 우리나라 숲속의 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표적인 지역이 습지, 특히 분해되지 못한 유기물이 ‘이탄Peat’이라는 형태로 쌓이는 지역이다. 이런 곳은 날씨도 선선하고 물이 차 있어서 미생물의 분해작용이 잘 일어날 수 없다. 또한 북극 가까이에 있는 ‘영구동토층Permafrost’이라 부르는 지역도 엄청난 양의 탄소가 땅속에 쌓여 있다. 짧은 여름철 동안 식물들이 광합성을 하면서 자라지만 1년 중 9개월도 넘는 기간에 걸쳐 땅이 꽝꽝 어는 이런 곳에서는 식물이 죽어도 썩지 않고 땅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탄습지나 영구동토층에 축적되어 있는 탄소들이 미생물에 의해 점점 분해되면서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이탄습지의 경우에는 인간의 활동으로 습지의 물을 빼서 농경지나 주거지로 개발하거나 가뭄으로 인해 물이 줄어드는 것이 관찰되고 있다. 또한 북극의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영구동토층도 더 이상 얼어 있지 않고 녹아버리면서 미생물들의 분해작용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우리 인간이 화석연료를 태워 기후변화를 일으켰지만, 이후에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인다 해도 이미 벌어진 기후변화의 후유증으로 토양에 오랫동안 저장되어 있던 유기물이 분해되고 그 산물로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예측하려면 토양에 대한 더 자세한 과학적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상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토양 내에 저장할 수 있는 탄소량을 공학적인 방법으로 증가시키려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이오차르Biochar’라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숯과 같은 물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농경지에서 곡물을 수확한 다음 남은 식물 부산물들은 그냥 태워버리거나 땅에 버리게 된다. 태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땅에 버린 것도 점차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서 이산화탄소 상태로 바뀌어 공기 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들을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연소시키면, 즉 숯으로 만들어버리면 이건 다른 얘기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이오차르는 땅에 뿌려두어도 미생물이 쉽게 분해할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오랜 기간 땅속에 탄소를 붙잡아두는 역할을 하게 된다. 두 번째 기술은 북유럽, 캐나다, 시베리아 등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이탄습지를 보존하고 파괴된 곳을 복원하는 기술이다. 특히 땅속에 묻혀 있는 유기물들이 빨리 분해되지 않도록 하는 친환경적인 기술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탄습지에서 분해 속도가 느린 것은 물에 잠겨 있기 때문인데, 파괴된 이탄습지를 복원하고 탄소를 안정적으로 저장하는 쉬운 방법은 습지들이 다시 물에 잠기도록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에 더불어 미생물의 분해를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자연에서 유래한 페놀릭 계열의 물질을 가하는 기술도 현장 수준에서 검증하고 있다.

짧은 글을 통해서 토양이 인류의 생존, 특히 기후변화를 완화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토양에 대한 연구와 보존은 단순히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거나 오염된 지역을 정화하는 문제를 넘어서 기후변화라고 하는 새로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적이다. 즉, 우리가 토양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기후변화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이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이용한다면 부작용 없는 해결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